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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루 (훔치는 자들의 세계)

동예영 2011. 5. 26.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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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루

공격 야구에서 도루는 아주 중요하다. 도루 능력이 있는 주자는 희생번트와 같이 하나의 아웃카운트를 희생하지 않고서도 득점권에 진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루에 이어 도루 그리고 안타로 득점. 야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야구인 가운데에는 발 빠른 선수의 출루는 솔로 홈런과 같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안타든 볼넷이든 몸에 맞아서든 1루에 출루하면 2, 3루를 연거푸 훔치거나 진루타로 3루에 간 뒤 내야 땅볼로 득점을 올린다. 발이 만든 홈런이다.


사실 발 빠른 주자의 가치는 도루에만 있지 않다. 상대 배터리를 비롯해 내야 수비를 뒤흔들 수 있다. 투수는 주자를 견제하는 데 힘을 쏟기에 타자에게 집중하지 못한다. 또한 변화구보다는 속구의 비율이 확 높아진다. 속구가 변화구보다 포수 미트에 도달하는 시간이 더 빠르기 때문이다. 이것을 타자는 역이용한다. 속구 하나만 노려서 칠 수 있다. 게다가 포수는 2루에 송구하기 쉬운 바깥쪽을 요구한다. 구종과 코스를 타자에게 읽혀서는 투수가 이기기 어렵다.

 

거기에 2루수와 유격수는 포수 송구에 대비해 2루 부근으로 자리를 옮긴다. 1, 2루 간이나 2, 3루 간이 넓어진다는 의미다. 그만큼 땅볼 안타가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빠른 주자를 의식해 수비수들이 타구를 처리할 때 급해질 수밖에 없다. 수비수가 서두르면 실책이나 악송구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수비를 압박하는 도루가 야구에 도입된 것은 1863년 또는 1865년이라고 한다. 어느 경기에서 필라델피아 키스톤스의 네드 커트버트가 1루에서 뛰어서 2루에 도달했다. 그때 심판은 “이게 무슨 짓이냐. 1루로 돌아가라!”고 지시했다. 이에 커트버트는 “1루에서 2루로 뛰지 말라는 규칙은 어디에도 없다”고 응수했다. 도루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19세기 야구에서 도루는 지금과는 정의가 달랐다. 단타 때 1루 주자가 3루에 도달해도 도루로 기록됐다. 지금과 거의 같은 도루 규정이 생겨난 것은 1898년이다.

 

 

도루의 삼위일체 ‘3S’

도루를 성공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1루에서 2루까지 달린다는 점에서 빠른 발을 떠올릴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팀에서 도루를 가장 잘하는 선수가 가장 발이 빠른 선수가 아닐 때도 있다. 적절한 스피드는 필요하지만 잘 달린다고 해서 도루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도루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인간 의지의 상징이다. 일반적으로 투수가 던진 공이 포수를 거쳐 2루까지 도달하는 데 평균 3.2초에서 3.4초가 걸린다. 주자가 1루에서 2루까지 뛰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3.6초 에서 3.8초 정상적이라면 아웃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투수와 포수의 허점을 파고들며 2루를 훔치는 데 성공한다. <사진: kaychae.com>

 

 

1984년 롯데는 육상 단거리 국가대표 출신인 서말구(현 해군사관학교 교수)를 코치 겸 선수로 영입했다. 서 교수는 1979년 멕시코시티에 열린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100m에서 10초 34의 당시 한국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2010년 김국영이 31년 만에 경신했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의 전성기 100m 기록은 11초5. 빠르게 달리는 것이 도루의 비결이라면 서 교수가 도루왕이 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서 교수는 롯데의 기대와는 달리 단 하나의 도루는커녕 경기에 출전조차 하지 못했다.

 

김광수 두산 수석 코치는 “야구에서 도루는 출발 총소리를 듣고 달리는 게 아니다. 상대 팀 투수를 비롯한 포수, 내야수와 수싸움이다”고 밝혔다. 상대의 견제를 뚫고 달릴 타이밍을 잡아야 하는 도루와 육상 단거리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의미다. 이것은 반응할 선택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반응 시간이 길어진다는 힉스의 법칙으로도 충분히 설명된다. 육상 선수는 반응할 선택지가 총소리 딱 하나밖에 없다. 그래서 0.1초 만에 스타트를 끊을 수 있다. 도루는 투수가 투구할 때 스타트를 끊고 견제구를 던질 때는 귀루해야 한다.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반응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런데 투수가 투구할 때 독특한 습관이 있고 그것을 주자가 파악하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주자는 뛸지 아니면 귀루할지 선택할 필요가 없다. 단지 뛸 기회만 포착하면 된다. 즉, 선택지의 수가 줄어들면 재빨리 반응할 수 있다. 도루를 잘하는 선수는 다수의 선택지 가운데 자신의 경험과 직감에 따라 선택지의 수를 줄여 빠른 스타트를 이끌어 낸다. 야구에서 도루를 잘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3S, 스타트와 스피드 그리고 슬라이딩이다.

 

“도루는 투수로부터 뺏는 것이지 포수로부터 뺏는 게 아니다”는 야구계 격언이 있다. 투수는 투구와 견제 동작에 차이가 없어야 하며 빠른 투구 동작으로 주자에게 타이밍을 뺏기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사진: 야구라>

 

 

스타트 - 투수는 도루를 허용하지 않기 위해 견제구를 던지거나 투구 동작에 들어가는 타이밍을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조절한다. 그런 봉쇄를 뚫고 투수의 독특한 습관을  파악해 뛸 기회를 잡는다.


스피드 - 주력도 포함한 개념이지만 주로 순간 폭발력을 나타낸다. 1루에서 2루까지 거리는 100m가 아닌 27.431m. 육상 단거리와 같이 30m가 지나서 가속도가 붙어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달리자마자 최고 속도에 도달하는 폭발력이 필요하다.


슬라이딩 - 육상에서 달리기는 결승점을 통과하고서도 계속 달리며 스피드를 줄일 수 있지만 도루에서는 오버런하면 대부분 태그아웃으로 귀결된다. 결국 베이스 근처에서 스피드를 줄일 수밖에 없다. 그 방법이 슬라이딩이며 수비수의 태그를 피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3S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스타트다. 김 코치는 “누구한테나 자기만의 리드 폭이 있다. 리드를 많이 하고 스타트가 빠르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근데 리드는 많은데 스타트가 늦으면 아무 소용없다. 리드가 적더라도 스타트가 좋은 게 낫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리드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리드 폭에 따라 도루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이 될 때가 잦다. 하지만 지나치게 큰 리드 폭은 주자 견제로 아웃 당할 위험성이 늘 따라다닌다. 결국 주자의 리드는 베이스로 되돌아갈 수 있으며 좋은 스타트를 할 수 있는 거리가 적절하다.

 

또 하나 주자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뛰지 않아야 할 때가 있다는 점이다. 주자 상황에 따라 손쉽게 도루를 성공할 수 있어도, 혹은 수비 측이 자동문을 열어 주어도 1루에 있는 것이 공격 측에 더 이익일 때가 있다. 주자 1, 3루에서 좌타자나 발 빠른 타자가 타석에 있다면 1루 주자는 수비 측의 신경을 긁기만 하는 게 좋다. 왜냐하면 1루수와 3루수는 각각 1루와 3루를 지킬 것이며 2루수와 유격수는 2루에 치우친 곳에 수비 위치를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1-2루 간과 3-유 간이 넓어져서 안타가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 수비 측이 주자가 없을 때와 같이 수비하면 2루 도루를 감행해서 병살의 위험성을 미연에 방지하면 된다.

 

 

도루를 막아라, 픽오프(Pickoff)

도루를 시도하는 자가 있으면 막는 자도 있는 법. 도루의 성패는 주자가 얼마나 리드를 많이 하고 스타트를 빨리 하느냐에 달려 있다. 거꾸로 수비 측은 주자를 베이스에 묶어 두는 픽오프(주자 견제)에 온 힘을 다한다. 누상에 주자가 있으면 1루수가 붙어 있는 1루와 달리 2루에는 아무도 없다. 2루에서 픽오프는 아주 중요하다. 3루 도루만이 아니라 단타로 2루 주자가 손쉽게 득점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2루에서 픽오프하는 방법은 데이라이트와 타이밍 픽 그리고 인사이드 픽이 있다.

 

데이라이트 (Daylight) - 2루 주자가 평소보다 더 많이 리드할 때 2루 커버를 맡은 야수가 베이스로 전력 질주해 글러브 또는 맨손을 든다. 그것을 본 투수는 바로 몸을 틀어서 공을 던진다. 이 플레이는 대개 미리 약속된 것이 아니라 주자의 리드를 보고 순간적으로 이루어진다.


타이밍 픽(Timing pick) - 내야수가 미리 투수에게 사인을 주고 타이밍을 맞춰 그 야수가 베이스에 들어가고 투수는 공을 던진다. 투수와 내야수는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대개 약속된 숫자를 헤아린다. 상황에 따라서는 2루수와 유격수가 교대로 2루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하며 주자를 현혹한다. 주자는 한 명의 야수가 2루 베이스로 들어올 때 귀루하고 나갈 때 다시 리드를 잡기 때문이다.


인사이드 픽(Inside pick) - 투수의 투구 동작 중 다리를 들었을 때 더 많이 리드하는 주자를 상대로 효과적이다. 앞다리를 든 투수가 뒷다리를 축으로 회전해서 2루를 커버하러 들어온 야수에게 던진다.

 

투수가 던지는 견제구의 주된 목적은 주자를 잡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자의 리드와 스타트를 뺏기 위해서다. 때로는 공을 포수에게도 1루수 등에게도 던지지 않고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것은 투수만이 아니다. 포수 역시 1루수나 유격수 또는 2루수) 등과 약속된 플레이를 통해 주자를 견제한다. 메이저리그의 명투수 코치인 밥 쇼는 주자 견제와 관련해 투수가 명심해야 할 세 가지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1. 포수가 볼을 되돌려주면 투수는 반드시 누상의 주자를 점검하라.

 

2. 포수의 사인을 받을 때는 항상 투수판 위에 서 있어라.

 

3. 타자를 상대로 투구하거나 주자를 잡기 위해 픽오프를 하라.

투수가 이 세 가지만 해도 주자의 리드를 적어도 15cm는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작 15cm. 하지만 15cm는 세이프와 아웃을 결정하기에 충분하다.

 

도루 저지와 관련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이 슬라이드 스텝(slide step)이다. 슬라이드 스텝이란 누상에 주자를 둔 상황에서 투수가 투구 동작을 작고 재빠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흔히 사용하는 퀵모션은 일본식 야구 용어다. 슬라이드 스텝으로 던져서 공이 포수 미트까지 도달하는 데 1초3 이내라면 도루를 시도하기 어렵다. 최근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기동력 야구가 대세를 이루며 슬라이드 스텝의 중요성이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도루 저지를 위해 슬라이드 스텝이 일찍부터 발전한 일본에서도 이 동작에 대한 반론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평소와 다른 슬라이드 스텝으로는 제대로 된 투구를 하기 어렵다. 커브만 해도 각도가 완만해져서 타자가 치기 쉽다. 도루를 저지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더 큰 위기를 가져오는 꼴이 된다. 투수의 주된 상대는 주자가 아닌 타자다. 타자에게 집중하는 편이 낫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통산 173승을 올린 구와타 마스미의 설명이다.

 

슬라이드 스텝은 도루 허용을 투수의 책임으로 본 것이다. 그런데 도루는 투수만의 책임일까? 당연히 그렇지가 않다. 투구한 볼을 받아서 2루로 송구하는 이는 투수가 아닌 포수다. 포수가 도루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강한 어깨보다도 빠른 송구 동작과 정확한 송구가 필요하다. 아무리 강한 어깨를 가졌다고 해도 송구가 부정확하거나 송구 동작이 거북이라면 토끼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도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타트다. 스타트해서 4, 5걸음 내에 도루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고 말할 정도다. <사진: 한상구>

 

 

포수의 도루 저지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가 도루 저지율이다. 흔히 도루를 많이 저지하는 포수가 좋은 포수라고 생각한다. 물론 도루 저지율이 높은 포수가 좋은 포수일 수도 있다. ‘좋은 포수이다’와 ‘좋은 포수일 수도 있다’는 전혀 다른 의미다.

도루 저지율=도루 저지÷(도루 허용+도루 저지)

수비수로서 포수의 임무는 도루 저지만이 아니라 투수 리드, 블로킹, 필딩, 태그 플레이, 베이스 백업 등 다양하다. 모든 것을 다 잘하는 포수가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약한 어깨여서 도루 저지율이 낮다고 해도 투수 리드와 블로킹 등이 좋다면 그 포수는 1군에서 뛰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도루 저지율은 도루의 책임을 오로지 포수에게 묻는다는 맹점이 있다. 도루는 어디까지나 투수와 포수의 공통 책임이기 때문이다.

 

사실 포수의 도루 저지 능력을 가늠하려면 도루 저지율만이 아니라 상대가 얼마나 많이 도루를 시도했는지도 봐야 한다. 강한 어깨에 빠른 송구 동작 그리고 정확한 송구를 하는 포수가 마스크를 쓰고 있다면 2루로 뛸 주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 또 한 가지는 투수가 어떤 구종과 어느 코스를 던졌을 때 포수가 도루를 저지하기 쉬울까이다. 몸쪽보다 바깥쪽, 특히 낮은 코스가 송구하기 편하며 가장 빠른 구종은 속구다. 이 점을 타자도 잘 알고 있다. 영리한 타자는 배터리의 심리를 역이용해 공략한다. 결국 포수가 지나치게 도루 저지율에 집착한다면 타자의 수읽기에 당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 포수는 투수 리드가 좋다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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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윤
야구전문블로그 <야구라>의 일원. 네이트 등에 야구 글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