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투수 보크(Balk)

동예영 2011. 5. 26. 13:55

투수 보크(Balk)

야구는 합리적인 스포츠다. 그리고 어느 종목보다 공평하다. 야구 경기에 나선 두 팀에겐 똑같이 9이닝 동안 27번의 아웃이 완료될 까지 공격 기회가 주어진다. 같은 조건을 최대한 활용해서 상대보다 많은 점수를 내는 팀이 승리한다. 투수와 타자도 마찬가지다. 투수에게는 볼넷, 타자에겐 삼진아웃이라는 페널티가 있다. 투수는 타자가 칠 수 없는 공을 네 번 이상 던져서는 안 되며, 타자는 충분히 칠 수 있는 공을 세 번 이상 그냥 지나쳐선 안 된다. 이런 규정이 없다면 타자는 치기 좋은 공이 들어올 때까지 계속해서 기다리기만 할 것이며, 투수는 투수대로 타자 배트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곳에 공을 던지는 통에 경기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야구의 합리성은 투수와 주자 간의 싸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주자가 홈플레이트와 가까워질수록 투수가 실점할 확률은 높아진다. 이에 투수들은 주자를 최대한 베이스에 묶어 두기 위해 애쓴다. 투수에게 주자를 견제할 권리가 주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반면에 공격하는 쪽에서는 주자와 홈의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이득이다. 투수가 투구 준비를 시작하면 주자는 한 발짝이라도 더 베이스에서 멀어지려고 시도한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다음 베이스를 향해 전력으로 질주한다.

 

그런데 만일 투수가 마치 타자에게 공을 던질 것처럼 시늉한 뒤 실제로는 견제구를 던진다면 어떻게 될까? 이미 스타트를 끊은 주자는 꼼짝없이 협살에 걸려 아웃 되고 말 것이다. 반대로 투수가 실컷 견제하는 동작을 해놓고 마지막 순간에 공을 타자 쪽에 던진다면, 주자는 갑작스런 견제에 대비해 베이스에 찰싹 달라붙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싸움은 투수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해진다. 주자가 뛸 수 있는 공평한 기회를 부여하려면 투수가 주자를 속이는 행위를 어느 정도 제약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보크(balk)라는 규칙이 탄생했다.

 

보크 규칙이 없던 초창기의 야구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단순하고 지루했다. 주자들은 막 사귀기 시작한 연인처럼 베이스에 붙은 채 떨어질 줄을 몰랐다. 투구할 것처럼 하다가 갑자기 홱 돌아서 견제구를 던지는 투수들의 '사기 행각'이 허용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의 야구는 공으로 주자를 맞혀도 아웃이 되는 형태였기에 베이스에서 발을 떼고 있는 행위는 맞혀서 아웃 시켜 달라는 애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시대의 야구에서는 주자로서 이종욱과 이대호 간에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보크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한국의 ‘발야구’처럼 화려하고 역동적인 주루 플레이를 경기장에서 보기란 어려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세트 포지션에서 사인을 교환하는 투수. 일단 투수가 투수판을 밟고 세트 포지션에 들어가면 공에서 손을 떼거나 글러브를 들어 올리는 등의 행위가 금지된다. <사진: 안준철>

 

 

다양한 보크의 유형들

야구 규칙은 보크를 “베이스에 주자가 있을 때 투수의 반칙 투구 행위(2.03)”라고 정의한다. 투수가 보크를 범하면 심판은 즉시 팔을 들어 “피처 보크, 유어 원 베이스!”라고 선언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주자는 한 베이스씩 다음 베이스로 진루할 권리를 얻는다. 투수 관련 규칙 (8.05)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보크에 해당되는 여러 가지 경우를 열거하고 있다. 몇 가지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투수가 투수판에 축이 되는 발을 댄 상태에서 투구 동작을 하다가 투구를 중지했을 경우 : 투수판에 축발을 디딘 상태라는 것은, 투수가 타자에게 투구할 의사를 표시한 것과 같다. 따라서 도중에 투구를 중단하는 것은 주자를 기만하는 것으로 보크가 된다. 특히 투수가 다리를 들어 올린 뒤 정지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된다. 다만 이 정지 동작이 자연스러운 투구 과정의 일부라면 보크로 판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또 축발이 투수판을 밟은 상태에서는 투구 동작 도중에 넘어지거나 공을 떨어뜨려도 보크 판정을 받는다. 2011년 3월 18일 시범경기에서 롯데 이재곤은 공을 던지려다 넘어지면서 보크를 범했다. 또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권혁은 투수판을 밟은 채 공을 떨어뜨렸다가 곤욕을 치렀다.

평소 올바른 투구 습관을 갖지 않으면, 긴박한 경기 상황에서 실수로 보크를 범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진은 리틀야구 투수에게 세트 포지션 투구폼을 지도하는 양주리틀야구단 박상근 감독. <사진: 안준철>

 

 

여기서 조금 더 심화된 규칙은 투수의 키킹 동작에 대해서도 제약을 가한다. 어떤 투수든 키킹 동작에서 들어 올린 발이 투수판의 뒤를 가로지르는 경우, 반드시 타자에게 투구해야 한다는 규칙이다. 특히 좌투수의 경우에는 우측 골반이 홈 방향을 향한 상태에서 견제구를 던져도 보크가 된다. 만일 이 규칙이 없다면 주자는 투수가 2루로 견제를 할지, 홈으로 던지려는 것인지, 아니면 견제를 하려는지 알 수가 없다. 결국 루상에 묶이거나 견제에 걸려 꼼짝없이 아웃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의 적발 사례는 2011년 3월 27일 시범경기 한화-KIA전에서 외국인 투수 트래비스 브래클리가 범한 보크다. 당시 좌완인 트래비스는 오른발을 1루 방향보다 조금 뒤쪽으로 들어올린 뒤 1루 주자를 견제했는데, 주심은 이 동작이 보크에 해당된다고 판정했다.

2. 투수판에 축발을 댄 투수가 1루에 송구하는 시늉만 하고 실제로는 송구하지 않았을 경우 : 2루와 3루로는 던지는 시늉만 해도 되지만 1루와 타자에게는 축발을 투수판에 댄 상태에서는 반드시 던져야 한다. 최근 화제가 된 영화 [글러브]에서 여기 해당되는 장면이 나온다. 투수가 마지막 순간 1루로 견제구를 던지려고 하지만, 1루수의 베이스 백업이 늦어져서 공을 던지지 못하고 ‘끝내기 보크’가 되는 장면이다.


3. 투수판에 발을 댄 투수가 견제구를 던지기 전에 앞발을 그 베이스 쪽으로 똑바로 내딛지 않을 경우 : 만일 왼손투수가 홈쪽으로 앞발을 내딛으면서 실제로는 1루로 송구한다면, 살아남을 주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야구규칙은 투수가 실제로 발을 내딛지 않고 앞발의 방향만 살짝 바꾸거나, 발을 내딛기 전에 몸의 방향부터 바꿔 송구하는 경우도 보크로 규정한다. 여기 걸려든 최근의 사례는 2011년 4월 13일 SK-한화전의 안승민을 들 수 있다. 당시 안승민은 1사 2루에서 2루 주자를 견제하려다 보크 판정을 받았다. 이유는 앞발을 확실하게 2루 방향으로 내딛지 않고, 거의 제자리로 스텝을 밟으면서 2루와 3루 사이의 어중간한 방향으로 내디뎠기 때문이다.

한편 규칙서 원주에는 “주자 1, 3루 때 투수가 3루 주자를 묶기 위해 3루 쪽으로 발을 내디뎠으나 실제로는 송구하지 않고, 1루 주자가 2루로 뛰고 있는 것을 보고 1루 쪽으로 몸을 돌리자마자 발을 내딛고 송구하는 것”은 보크가 아니라고 알려 준다. 지난해(2010년) 8월 24일 잠실 LG-두산전에서 김광삼의 보크가 논란이 된 것은 이 때문이다. 당시 김광삼은 2사 1, 3루에서 공을 던지려다 1루 주자 고영민이 스타트를 끊자, 포수 지시에 따라 1루 쪽으로 몸을 틀어 협살을 시도했다. 심판의 보크 선언에 LG측은 “3루로 견제할 의도가 있었다”고 항변했지만 당시 김광삼의 왼발은 3루가 아닌 홈 방향으로 내딛은 상태였다. 갑작스런 포수의 견제 지시에 당황해서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견제구를 던질 때는 내딛는 발이 공을 던지려는 베이스의 방향을 향해야 한다. 만일 투수의 발이 1루를 향하면서 실제 견제는 2루로 던진다면, 살아남을 2루 주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진: 안준철>

 

 

4. 투수판에 축발을 대고 있는 투수가 주자가 없는 베이스에 송구하거나 송구하는 시늉을 하였을 경우 : 컴퓨터용 야구 게임에서는 이런 행위를 해도 보크로 처리되지 않지만 실전에서는 보크다. 다만 규칙에는 주자가 도루하는 것을 막을 목적으로 베이스 방향으로 올바르게 앞발을 내딛으면 보크가 아니라고 알려 준다. 또한 투수판에서 축이 되는 발을 올바르게 뺐을 때도 마찬가지다. 투수가 일단 축발을 투수판에서 빼면 투수도 야수의 한 사람이 된다. 따라서 이때는 자유롭게 어느 야수를 향해서든 공을 던질 수 있다.

 

5. 투수가 반칙 투구를 했을 경우 : 투수판에 발을 대지 않고 투구하는 것, 공에 흠집을 내거나 이물질을 바르는 행위가 여기에 해당된다. 특히 메이저리그에서는 스핏볼을 방지하기 위해 투수가 손을 입에 가져가는 행위도 규제하고 있다. 이런 행위는 주자가 없을 때는 볼, 주자가 있으면 보크로 판정된다. 퀵 피치(quick pitch)라 해서 타자가 타석에서 충분한 준비를 갖추기 전에 투구했을 경우도 반칙 투구에 해당되는데 역시 보크 판정을 받는다.

 

6. 투수가 투수판을 밟지 않고 투구와 관련된 동작을 취했을 경우 : 포수 사인을 받고 투구 동작을 시작할 때 투수는 반드시 투수판을 디디고 있어야 한다. 올해(2011년) 4월 17일 열린 메이저리그 오클랜드-디트로이트 경기에서 저스틴 벌랜더는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장면을 연출했다. 벌랜더는 주자 1루에서 엉뚱하게 타자를 향해 ‘견제구’를 던졌는데(심지어 타자 몸에 맞았다), 1루 견제를 위해 뒷발을 투수판에서 뺐다가 몸이 제대로 1루쪽으로 회전하지 않자 보크를 피하겠다는 생각에 엉겁결에 홈을 향해 공을 던져버린 것. 오클랜드 벤치에서는 몸에 맞는 공이 아니냐고 항의했지만, 심판진은 벌랜더가 투수판을 밟지 않은 상태였다는 점을 들어 보크로 처리했다. 

7. 투수가 불필요하게 경기를 지연시켰을 경우 : 경기 촉진 룰에 따라 주자가 있을 때는 보크가 선언될 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1997년 4월 24일 OB(두산의 전신) 강병규다. 당시 강병규는 4-2로 앞선 5회 초 1사에서 1루 주자 이승엽을 향해 견제구를 던졌다. 문제는 견제구가 아리랑볼처럼 높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는 것. 의외의 보크 판정에 흔들린 강병규는 이후 이동수에게 적시타를 맞고 강판되며 승리 투수가 되는 데 실패했다.

 

8. 투수가 공을 갖지 않고 투수판을 밟거나 걸쳐 섰을 경우 또는 투수판에서 떨어져서 투구하는 시늉을 했을 경우 : 이는 수비수가 공을 숨겨 두고 있다가 주자가 베이스에서 떨어지면 태그해서 아웃시키는 '사기'를 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규칙이다. 매우 치사한 플레이지만 과거에는 내야수가 견제구를 받은 뒤 투수에게 던지는 척 하면서 몰래 공을 숨겨 두는 식으로 주자를 속이는 경우가 종종 벌어지곤 했다. 1986년 7월 28일 빙그레 투수 장명부는 이 규칙으로 보크가 선언된 흔치 않은 예다. 당시 장명부는 유격수 김종수가 공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투구할 것처럼 동작을 취했다가 보크 판정을 받았다. 이후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은 장명부는 무사 만루에서 3루 주자를 향해 고의로 보크를 범해 결승점을 내줬다. 장명부에게는 경기 후 벌금 30만원이 부과됐다.

 

9. 투수가 세트 포지션에서 완전히 정지하지 않고 투구했을 경우, 세트 포지션에서 주자를 속이는 동작 : 최근 일본에 진출한 박찬호(오릭스)가 이 규칙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세트 포지션에서 투수는 투구 직전까지 몸의 앞에 글러브를 낀 손과 다른 손을 맞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육안으로 ‘정지동작’이라는 점을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의 상태 -약 1.5초- 를 일정 시간 유지해야 한다. 조종규 KBO 심판위원장은 이에 대해 “투수의 정지동작이 없으면 주자는 주자대로 스타트를 끊을 수가 없고, 타자도 타이밍이 안 맞게 된다”고 설명한다. 공을 던지는 주도권이 투수에게 있는 만큼, 주자와 타자에게 준비할 수 있는 공평한 기회를 주기 위한 규칙인 셈이다. 그리고 투수가 세트 포지션 상태에서 공에서 손을 떼거나 글러브를 위아래로 들어 올리는 동작, 앞쪽 어깨를 안으로 집어넣는 동작, 축이 되는 다리를 떠는 동작을 취해도 보크로 판정된다. 마치 투구를 할 것처럼 주자를 기만하는 동작이라는 이유에서다.

 

주자와 투수의 싸움은 타이밍 싸움이다. 주자는 투수의 투구폼과 견제 동작, 평상시의 습관 등을 유심히 관찰해서 스타트를 끊는다. <사진: 송승현>

 

 

여기서 이런 의문이 생긴다. 박찬호는 미국에서는 거의 보크를 범하지 않는 투수였지만(통산 15개), 일본에 가서는 경기당 거의 1개꼴로 보크 지적을 받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조종규 위원장은 “정지 상태가 다소 빠른 편”이라고 지적한다. “일본은 하나-둘-셋에서 던져야 되는데 박찬호는 ‘하나’에서 던지는 모습을 종종 봤다. 기만행위라기보다는 습관인데 미국과 달리 일본은 정지 동작에 엄격한 편이라서 고쳐야 된다고 본다.” 조위원장의 말이다.

 

한편 프로 심판원 출신의 이규석 대한야구협회 기술이사는 “원래 야구 규칙에 정지 상태에서 몇 초가 지나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고 설명한다. “미국에선 일단 정지만 하면 크게 문제로 삼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은 자체적인 합의를 통해 하나-둘-셋 정도는 정지해야 한다고 정한 거다. 그게 일본 룰이니 따를 수밖에 없지 않겠나.” 이 기술이사의 말이다.

 

미국에서도 정지 동작에 대해 일본처럼 까다롭게 제약을 가한 때가 있었다. 보크가 전례 없이 늘어난 1988년 시즌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리그 사무국은 심판에게 ‘야구 규칙에 명기된 대로 보크를 엄하게 적용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지금의 일본처럼 세트포지션에서 일정 시간 이상 정지하지 않는 투수에게는 무조건 보크가 선언됐다. 투수들이 집단 혼란을 겪은 것은 당연한 일. 일부 심판은 점수 차가 벌어지거나 투수가 타자를 속일 이유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보크 판정을 남발했고 경기는 엉망진창이 됐다. 규칙이 야구를 망친 대표적인 사례다.

 

야구 규칙(8.03)의 원주에는 다음과 같은 주의 사항이 나와 있다. “심판은 보크 규정의 목적이 투수가 고의로 주자를 속이려는 것을 막으려는 데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의심스러운 때는 투수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가 해결의 기준이 된다.” 따라서 아무 때나 눈에 불을 켜고 보크를 잡아 대는 것은 이 규칙이 만들어진 취지를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이다. 이규석 기술이사는 “심판은 투수가 원래 해 왔던 동작이나 경기 상황까지 고려해서 판정을 내린다”고 설명한다. “원래 1초 정지했다가 던지던 선수가 그보다 빨리 던졌다면 의도가 있다고 보는 거다. 반대로 여태껏 해 온 동작을 볼 때 기만할 의도가 없다거나, 점수 차가 벌어지고 발이 느린 주자가 있어서 도저히 그럴 상황이 아닐 때는 기만이 아니라는 거다.”

 

심판들의 보크 판정이 주로 시범경기와 시즌 초에 엄격하게 적용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투수에게 “그렇게 하면 보크가 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라”고 미리 알려 주기 위해서다. 막상 정규 시즌에 들어가면 심판의 보크 규칙은 경기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된다. 보크가 지나치게 규칙에 얽매여 세세하게 적용된다면 투수들의 짜증과 감독의 항의로 정상적인 경기 진행은 불가능할 것이다. 반대로 심판들이 마치 보크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느슨하게 판정한다면 모든 투수와 주자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당시 봉중근-이치로의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그 중간에서 경기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는 적정선을 유지하며 투수와 주자 모두에게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룰을 적용하는 게 심판이 할 일이다.

 

만일 보크를 범한 투수가 던진 공을 타자가 받아 쳐서 안타나 홈런이 됐을 경우는 어떻게 처리될까? 19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보크 이후의 모든 상황은 노플레이로 선언됐다. 따라서 타자가 홈런을 쳐도 무효로 처리됐다. 하지만 ‘규칙을 어긴 것은 투수인데 타자가 손해를 보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받아들여지면서 1950년대 이후에는 보크에 의한 투구에 대한 타격 결과도 인정하게 됐다. 야구 규칙 8.05의 ‘벌칙’에는 보크 때 “타자가 안타, 실책, 4사구, 기타로 1루에 출루하고 다른 주자들도 최소한 1개 베이스 이상 진루하였을 때는 보크와 관계없이 플레이는 계속된다”고 명기돼 있다. 야구 규칙의 합리성과 공평성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되는 대목이다.